| [왓처데일리] 전두환 씨가 회고록에서 자신은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제물’이 됐다고 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시종일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로 표현했고 “광주에서 양민에 대한 국군의 의도적이고 무차별적인 살상행위는 일어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발포명령’이란 것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내란죄의 수괴(형법 제87조 제1호), 전두환 씨다운 궤변이다. 전두환 씨는 20년 전에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1997년 4월 17일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당시 '12·12, 5·18 사건' 확정판결에서 '광주 재진입 작전명령은 시위대의 무장상태 그리고 그 작전의 목표에 비추어 볼 때, 시위대에 대한 사격을 전제하지 아니하고는 수행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므로 그 실시명령에는 그 작전의 범위 내에서는 사람을 살해하여도 좋다는 발포명령이 들어 있었음이 분명하다"며 전두환 씨 등 피고인의 내란목적 살인혐의를 인정한 바 있다.
특히 1995년 우리나라는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범죄행위에 대한 공소시효 정지 등에 관한 사항 등을 규정함으로써 국가기강을 바로잡고 민주화를 정착시키며 민족정기를 함양”하기 위해 「5ㆍ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으며, 「5ㆍ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과 「5ㆍ18민주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그럼에도 전두환 씨는 이같은 대법원 판결과 현행법률조차 정면으로 부인했다. 내란죄로도 모자라, 법치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법률 쿠데타’를 시도하는 전두환 씨의 망언을 규탄한다.
이같은 전두환 씨의 망언이 가능한 이유는 ‘발포책임자’ 등 역사적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두환 씨는 법정에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반성이 없었다. 새로운 역사는 반성에서부터 시작되며,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발포명령자’ 등 역사적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올해 1월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에서 무차별 사격이 이뤄졌다는 공식 보고서까지 제출했으며, 국회는 지난 3월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총격 의혹 진상규명 촉구 결의안을 의결한 바 있다.
이미 지난 1989년 국회 5ㆍ18진상규명청문회와 1995년 검찰수사 과정에서 5ㆍ18 당시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헬기 총격을 가했고 사상자까지 발생했다는 무수한 증언들이 있어 왔다. 또한 당시 기관총을 장착한 헬기가 매일 5∼6대씩 광주에 출격했다는 증언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정부는 진상 규명을 외면해 왔다.
더 이상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을 늦춰서는 안된다. 차기정권은 출범하자마자 80년 5월 광주의 발포책임자 등 역사적 진신을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