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것으로 추측하실 텐데 그것보다는 처벌 가능성을 높이는 게 중요합니다. 성폭행 가해자 가운데 징역 5년 이상의 중형을 받는 사람은 100명 중에 1명 있을까 말까 하거든요."
이윤상 한국성폭력상담소장(사진)은 13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최근 몇 년간 일어난 아동 성폭력 사건 때문에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지만 "실제로 처벌받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많지 않다"면서 안타까워했다.
"성폭력 가운데 가장 신고율이 높은 강간이나 강간미수도 신고율이 10퍼센트 정도밖에 안 돼요. 그 중 기소되는 것도 절반밖에 안 돼요. 기소된 사건 중에서도 유죄가 입증되는 건 일부인데다 많은 사건은 집행유예 판결이 나죠."
우리나라 최초의 성폭력 피해자 상담ㆍ지원 기관이자 반성폭력 운동단체로 출발한 한국성폭력상담소가 13일 개소 20주년을 맞았다. 그간 제도적 개선 등 많은 성과를 이뤘지만 아직 할 일이 많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이 소장은 특히 성폭력 범죄는 피해자가 고소해야 하는 친고죄라 친고죄 관련 조항을 폐지하는 것이 지금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그는 "20년 동안 친고죄 폐지를 주장했는데 꿈쩍도 안 한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피해자의 사생활과 명예를 보호하려고 성범죄를 친고죄로 유지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는 틀린 말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1심 선고 전에 합의하고 고소를 취하하면 아무 일도 없던 게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 가해자들이 합의를 종용해서 신원이 노출돼 직장이나 학교를 못 다니고 이사를 해야 하는 사태가 생기죠. 근본적으로는 (친고죄 존치론이) 잘못된 통념에 기반을 둔 거로 생각해요. 다시 말해 성폭력 피해를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로 본다는 거죠. 강력범죄 중에 친고죄는 성폭력밖에 없다는 건 성폭력을 사회적 문제, 인권 침해로 보지 않고 개인적 문제로 보는 왜곡된 인식 때문입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여러 사건을 통해 사회적 이슈를 일으키면서 성폭력에 대한 제도적 개선을 이끌어냈다.
1991년 어린 시절 자신을 성폭행한 남성을 살해한 김 모씨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면서 주목을 받았고 이런 활동으로 1993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는데 견인차 구실을 했다.
이 소장은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을 지원한 것도 중요한 일로 꼽았다. "우리나라 성희롱 소송 제1호라고 했죠. 재판에서 성희롱 피해를 인정한 첫 사례인데 이 덕분에 1999년에 남녀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면서 직장인 성희롱 관련 조항이 생겼죠. 한 여성의 용기 있는 선택이 사회적으로 굉장한 변화를 가져왔어요." 2000년대 들어서는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등을 통해 성폭력 피해자가 신고 후에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 2차 피해의 문제를 이슈화했다.
1992년 자원활동가로 시작해 20년 가까이 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해온 이 소장은 단체 이름에 '성폭력'이라는 '강한' 단어를 내걸어도 될지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했던 20년 전과 비교하면 가려졌던 문제가 수면 위로 나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법과 제도는 많이 바뀌었지만 인식은 그대로인 것 같다는 생각이 어떨 때는 든다"면서 "상담소 초기에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정리한 게 있는데 지금도 그게 유효하다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 사람의 생각을 바꾼다는 게 정말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린다는 게 씁쓸하다"고 말했다.
"성폭력이 중요하고 심각하다는 인식은 확산됐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이게 내 문제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나도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해요. 여전히 예외적인 문제이고 나한테만 안 일어나면 된다고 생각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