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성 만성질환 치료 길 열었다
2011년 09월 06일 15시 10분 입력

▲서울대 안광석 교수, 이상현 박사과정생, 김성철 박사과정생(왼쪽부터)
사람의 세포 속에 숨어 지속적으로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죽이는 방법을 국내 연구진이 찾아냈다.

  

이에 따라 만성감염 원인 바이러스에 대한 새로운 개념의 백신 개발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안광석 서울대 교수와 김성철·이상현 박사과정생이 참여한 연구팀이 거대세포바이러스(CMV)에 만성감염된 5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이 바이러스가 만드는 'US4' 마이크로RNA가 세포 안에서 바이러스를 잡는 킬러T임파구의 활동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6일 밝혔다.

  

CMV는 전 세계인의 70%가 감염된 흔한 바이러스로, 사람 몸속에서 다양한 신경계 질환이나 정신지체, 동맥경화 등을 일으킨다. 보통 바이러스가 사람 몸속에서 항체나 킬러T임파구 등에 잡혀 일정기간 이상 살기 힘든 것에 비해 CMV는 사람 세포 속에서 계속 살아남아 만성질환의 원인이 된다.

  

연구진은 이 같은 CMV의 '면역 스텔스(면역 공격을 피해 숨는 것)' 현상이 이 바이러스가 만든 마이크로RNA의 역할 때문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마이크로RNA는 21~23개 염기로 구성된 아주 작은 RNA(리보핵산)을 말하는데, 인간 마이크로RNA의 경우 그동안 연구를 통해 유전자 발현 조절 등의 기능이 밝혀졌지만, 바이러스의 마이크로RNA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연구 결과에 따르면 CMV 바이러스 마이크로RNA는 세포 안의 효소 'ERAP1'의 생성을 방해한다.

  

ERAP1 효소는 바이러스가 만들어내는 단백질을 잘게 잘라 'MHC(조직적합성 복합체'라는 단백질이 결합하기 쉽게 한다. MHC가 이 바이러스 단백질 조각들을 끌어내 킬러T임파구에 제시하면, 킬러T임파구는 병원체 여부를 판단한 뒤 공격하는 것이다.

  

따라서 ERAP1 효소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이와 같은 일련의 면역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결국 킬러T임파구는 세포 안에 바이러스가 존재함에도 이를 찾아내지 못하게 된다.

  

이번 연구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만성감염의 원인인 CMV나 '엡스타인-바 바이러스(EBV)' 등이 만들어내는 마이크로RNA를 목표(타깃)로 삼는 백신 개발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안광석 교수는 "지금까지 항바이러스 백신 개발은 대부분 바이러스가 만드는 단백질 성분을 타깃으로 삼고 있지만, 이 방식으로는 CMV처럼 세포 속으로 숨어들어 계속 활동하는 바이러스에 대한 근원적 치료나 예방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바이러스 마이크로RNA를 제어하는 방식의 효과적인 만성감염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전문지 '네이처'의 자매지 '네이처 이뮤놀로지(Nature Immunology)'에 실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