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이룩한 의학 발전..그리고 윤리>
2010년 09월 26일 16시 19분 입력

의학은 전쟁과 포화를 자양분으로 삼는다. 비약적인 의학 발전, 그 원동력 중 하나는 분명히 전쟁이었다.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소장 정도언) 주관 아래 다음달 1일 이 병원 임상의학연구소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올해 제4회 병원사(病院史) 국제심포지엄은 전쟁과 의학, 그리고 그 둘 사이에 가로놓인 윤리 문제를 집중 탐구한다.

 

이번 심포지엄은 더욱 범위를 좁혀 '동아시아의 전쟁과 의학, 1937~1953'을 탐구 대상으로 잡았다.

시작점인 1937년은 중일전쟁이 발발한 때이며, 종점인 1953년은 말할 것도 없이 한국전쟁이 휴전한 해를 지칭한다. 나아가 이 기간 동아시아란 일본 식민지배 하의 조선과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을 말한다.

 

대회 주최 측은 26일 오늘날 한국 의료계의 눈부신 성장은 역경을 거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면서도 "한편에서는 고귀한 생명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던 비윤리적인 행위도 있었으며, 이는 의학과 의료인의 존재 목적에 대한 깊은 성찰을 오늘날 우리에게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이번 심포지엄은 중일전쟁 이래 한국전쟁 휴전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를 휩쓴 일련의 전쟁에서 의학과 의료인이 어떤 변화를 겪었으며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한ㆍ중ㆍ일 삼국의 이 분야 연구자들의 분석을 통해 살핀다.

 

아시아생명윤리학회장과 유네스코 세계과학기술윤리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한 송상용 한림대 명예교수는 '서양과학사학자가 본 동아시아의 전쟁과 의학'이라는 기조강연을 통해 1945년 원폭투하와 731부대의 만행을 주목하면서 전쟁과 의학, 그리고 윤리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제기한다.

 

개별 발표에서는 질병사 연구자인 이지마 와타루(飯島涉)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학(靑山學院大學) 사학과 교수가 일본 식민지에서 진행된 감염증 및 기생충병 연구가 이들 지역에서 공중보건을 통해 식민 통치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지적한다.

 

이지마 교수는 나아가 이런 식민지 의학 경험이 1980년대 이후 일본의 개발도상국에 대한 국제적인 의료보건 분야 지원에도 활용된 사실을 예로 듦으로써 식민지 의학이 단순히 잊힌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구성하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고 주장한다.

 

중국 의학사 연구자인 장다칭(張大廳) 베이징대학 의학사연구센터 주임 겸 교수는 '중국 최초의 혈액은행 : 전시하 새로운 의료기술의 이전, 수용과 그 영향'이라는 발표에서 전쟁이 수혈과 혈액저장의 기술적 발전에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음을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1944년 미국의 원조로 중국 쿤밍(昆明)에 군의서(軍醫署) 혈액은행이 설치되면서 중국인들에게는 헌혈이 건강에 지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위대하고 박애주의적인 행동이라는 사고가 자리잡기 시작했으며, 혈액은행이 배출한 기술 인력이 이후 중국 의학계를 이끄는 엘리트가 됐다고 말한다.

 

731부대로 대표되는 생물학전ㆍ화학전 전문 연구자인 쓰네이시 게이이치(常石敬一) 일본 가나가와대학(神奈川大學)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기밀 해제된 1940년대 각종 자료를 통해 일본군이 생물학전을 수행한 증거들을 제시한다.

 

나아가 731부대에 일본 의학교수들의 수제자들이 파견되고 이들이 다시 전후 일본 내 의과대학 교수로 임명된 사실도 지적한다.

 

이 외에도 이번 대회에서는 아시아태평양전쟁기 조선인 종군간호부와 한국전쟁기 한국인의 의료 체험에 대한 연구논문 등도 발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