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참치 김치찌개 대신 전날 먹다 남은 청국장 찌개를 먹고 출근해야 했다. 간식용으로 생협에서 파는 구운 검은콩을 선물 받았는데, 동료가 엎어버렸다. 점심 때 들어간 국수집에서 즐겨먹었던 비빔국수를 두 눈 딱 감고 외면하고, 대신 콩국수를 최대한 싱겁게 먹었다. 그리고 저녁은 그냥 두부 부침과 깻잎을 먹었다.

며칠 후 금요일 저녁, 대학 선후배 모임이 있는 고기집에서 식생활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잔인한(?) 질문을 해보자. 육식을 하지 않는 채식주의자가 설탕이 없는 것으로, 최대한 짜지 않게, 고기집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몇 가지나 될까?

그녀가 먹을 수 있었던 것은 ‘계란찜’이 전부였다. 2차로 맥주집에 갔다. 그녀는 문득 ‘맥주에 설탕이 들어있을까?’ 궁금했다. 마시지 못해 더욱 궁금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레 겁먹고 맥주를 못 마신 것은 억울했다. 확인 결과 '먹어도 OK!'.

국산 맥주 가운데 설탕을 첨가하는 것은 없고, 주세법상 설탕 이외의 화학첨가물은 사용할 수 없다. 맥주에 들어있는 당은 맥아가 발효하면서 생겨나는 것. 단당류와 이당류는 존재하지 않으며 삼당류 이상만 소량 존재하는데 그 마저도 효모가 반은 먹는다.

가렵고 어지럽고.. 금단 현상이 시작됐다

'금단' 현상은 예상보다 일찍 찾아왔다. 금요일 출근길부터 작은 열기가 가슴과 머리를 오가는 것 같았다. 몸이 가렵고 가벼운 두드러기 증상이 나타났다. 저녁이 되면서 열기가 머리 쪽에 머무는 것 같았다. 머리가 무겁고 약간의 현기증이 생겼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현상이 설탕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음날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설탕을 끊어서 생기는 금단 현상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평소에 내가 그렇게까지 설탕을 많이 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울할 때 초콜릿과 빵을 먹거나 술을 좀 자주 마신다 뿐이었지 평소에 그렇게까지 단 음식을 달고 다는 사람이 아닌데 벌써 설탕을 먹지 않아 생기는 금당현상이 시작되었다.”

토요일, 금단증상은 이어졌고 졸음이 쏟아지기까지 했다. 너무 졸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증에 빠졌다. 하루 종일 자다가 저녁때가 되어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시장에 들렀다. 곳곳에서 그녀의 눈과 혀를 자극하는 음식들의 추파를 외면해야 했다.

유혹을 못이긴 그녀는 결국 계란을 사먹기로 했다. 삶은 계란 4개를 먹으며 ‘마약을 끊은 것도 아닌데 손은 왜 떨릴까’ 생각을 하니 새삼 설탕이 무섭다. 수많은 꼬임을 뿌리치고 그녀는 순두부와 버섯, 과일들을 사서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화내고 무기력.. 육체만 고달팠던 것은 아니다

시장을 보고 집으로 왔을 때 ‘과일을 싼 것으로만 사와서 맛이 없다, 순두부는 식구들이 먹지도 않는데 왜 사왔냐, 파프리카는 시들었다’는 등 어머니의 타박이 이어졌다.

그녀는 미역국을 먹을 생각이었다. 어머니는 그녀가 장을 봐오는 동안 저녁을 준비했는데 미역이 너무 불어 있었다.  ‘미역을 너무 오랫동안 불리면 맛있는 국물이 다 빠져나가는데, 중간에 좀 건져 놓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결국 요리하는 내내 그녀는 화를 삭이지 못했고 식사하는 순간까지도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고 허무하게 그녀는 또 졸렸다. 그렇게 두통에 시달리고, 무기력하고, 졸립고, 화가 나는 증상이 생겼다.

일요일에 두통이 조금 가라앉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졸립고 무기력한 것은 여전했다. 문득 자신에게 '설탕을 먹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애초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자 이렇게 중독성 있는 설탕을 마음껏 만들어내는 기업들이며 그것을 허용하는 정부에 화가 났다.

어찌되었건 지금 그녀는 무기력하고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린다. 단지 5일 동안 설탕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 고은미씨의 블로그 ‘세상날기 자유롭게, 평화롭게’(http://blog.naver.com/ecojustices)에서 그녀가 직접 이야기하는 ‘설탕 끊기’ 체험을 확인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