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에 대한 은미씨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신호등 사탕이다. 10원에 3개 짜리 사탕.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린아이 시절, 그 사탕은 ‘인생의 낙’이었다. 어린 은미에게 거짓말을 하도록 만든 악마와도 같은 치명적 매력을 지닌 존재였다고 하면 과장일까?
그리고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달콤함은 그녀의 인생 깊숙이 파고들었다. 집 앞 빵집의 빵이, 지하철역 주변 도너츠가, 달콤한 커피 음료가 하루에도 몇 번씩 그녀를 고민에 빠뜨렸다. 간식으로 먹는 것들은 아예 설탕이란 존재를 의식하지도 않고 먹었다. 우울한 날이면 술과 빵과 초콜릿으로 마음의 허기를 달랬다.
“초콜렛을 롤러코스터 같은 나의 정신세계의 신경안정제로 여기며
물론 비장한 각오로 출발했지만 당연하게도 손이 떨리거나 미칠 것 같은 극적인 신체적·정신적 변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아직 간밤에 먹은 음식들도 소화되기 전이다. 대신 식단에서 설탕을 제외하는 번거로운 일이 생겼다.
점심시간 팥죽에 설탕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팥죽을 시켰다. 하지만 함께나온 김치와 오이냉국은 손도 대질 못했다. 보리밥은 소금에 비벼서 먹어야 했다. 팥죽과 소금에 비빈 보리밥이 전부였지만 맛이 담백한 것이 그냥 견딜만 하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실험으로 인한 변화는 조금씩 시작되고 있었다. 너무 느려서 통렬히 절감할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을 뿐.
그 느린 변화는 퇴근길 들른 동네 마트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녀가 즐겨먹던 두유와 간식들이 평상시처럼 진열되어 있지만, 이제는 '접근 금지'의 대상이 됐다. 오늘의 마트가 어제의 마트와 다르지 않은데, 전혀 다른 마트가 그녀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물론 찾아보면 알겠지만 두유에 콩만 들어간 제품은 없다. 두유 대신 다른 음료수를 고른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설탕 없는 음료수는 생수가 고작이었다. 은미씨는 음료수를 포기하고 대신 복숭아와 새싹 야채들을 사들고 나왔다.
예전에 단 맛은 고급스런 맛이었다. 지금처럼 아무나 누릴 수 없는 맛이었기 때문이다. 은미씨는 갑자기 자신이 천민이 되어버린 것처럼 느꼈다. 그날 그 골목에서 7월의 더운 바람이 훅하고 불어오는데, 은미씨의 가슴에 닿는 순간 차갑게 소용돌이친다.
* 고은미씨의 블로그 ‘세상날기 자유롭게, 평화롭게’(http://blog.naver.com/ecojustices)에서 그녀가 직접 이야기하는 ‘설탕 끊기’ 체험을 확인 할 수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