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보고 일반인이 재미있게 와인에 접근하게 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와인 업계에서 직업적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만화에 푹 빠져서 만화에 나오는 대로 흉내를 내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여 와인 업계에서 오래 일해 온 사람으로서 몇 가지를 짚고 넘어 가고자 한다. 물론 만화책의 내용을 하나씩 지적하면서 옳다, 그르다 따지고 싶지는 않다. 다만 만화에서 크게 잘못 이야기되고 있는 두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와인의 맛을 볼 때에 냄새를 맡으면서 자주 머릿속에 여자의 형상을 그리고 있다. 이것을 보고 어떤 사람들이 “나는 왜 여자의 형상이 머리에 안 떠오르나?” “나는 와인 맛보는 재능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 본 일이 있다.
내가 포도주 공장에서 일하면서 또 미국, 독일, 프랑스에서 와인 공부를 하면서 와인 맛보는 수업을 많이 받았는데 와인의 맛을 보고 표현을 할 때에는 구체적이고도 객관적인 표현을 하여서 남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배웠다.
조금 자세히 말하면 눈으로 보는 와인 색깔의 종류, 짙기, 투명도, 점도 등을 표현하는 용어들을 배우고 또 코로 냄새를 맡을 때에 포도의 향인 아로마와 숙성향인 부케를 표현할 때 사용되는 용어들, 또 혀 맛보고 표현할 때 사용되는 용어들, 기타 와인에 관한 표현을 할 때 사용되는 용어들을 예시하고 이러한 구체적이고도 객관적인 용어들을 사용하여 와인의 맛을 표현하는 훈련을 하였다. 이런 어휘를 많이 알고 있으면서 적재적소에 잘 사용하는 것이 소믈리에나 와인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 기타 와인 전문가들이 표현하는 방법이다. 부탁하거니와 와인 업계에서 직업적으로 혹은 전문적으로 일을 하는 분들은 와인 냄새를 맡으면서 여인의 형상이 나타난다는 등의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말고 객관적이고 남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가능하면 정해진 용어들을 사용하기 바란다.
둘째, 디캔팅을 하는 행동에 관해서 한마디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은 무슨 실을 뽑아! 도대체가 이런 해괴한 모양의 디캔팅은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행동이다. 디캔팅이란 와인 병 속에 있는 침전물을 미리 제거하여 와인을 잔에 따를 때에 와인 잔 속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여 손님이 좋은 와인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디캔팅하는 요령은 왼손에는 디캔터를, 오른손에는 와인 병을 잡는데 와인 병이 뉘어진 상태에서 흔들리지 않게 서서히 와인을 디캔터에 따르게 된다. 병의 어깨 부분 아래에 촛불을 켜 놓고서 병의 위쪽에서 와인을 주시하면 처음에는 맑은 와인만 지나다가 얼마 후에는 침전물이 지나가는 것이 보이는데 적당한 시점에서 디캔팅을 중지하면 디캔터 속에는 맑은 와인이, 병 속에는 침전물이 많이 든 와인이 남게 된다. 이렇게 하여 디캔터 속의 맑은 와인을 서빙한다.
디캔팅은 항상 촛불 위에서 실시하여 침전물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해야 한다. 그런데 손을 높이 쳐들고서 무슨 명주실을 뽑듯이 가늘게 뽑아가지고서야 어떻게 촛불 위에서 침전물을 볼 수가 있겠는가? 디캔팅은 그런 폼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혹시라도 현직 소믈리에들은 이런 흉내라도 내지 말기를 바란다. 또 이런 만화, 아니 엉뚱한 모션과 표현을 하는 드라마가 만들어질까 걱정되기도 한다.
디캔팅은 침전물을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디캔팅을 하는 과정에 와인이 교반되므로 와인 속에 포화되어있던 향이 많이 휘발하여 와인의 향을 좋게 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필자 소개: 연세대 화공과 졸업, 미국 포도주 공장 연수(캘리포니아, 뉴욕 주), 독일 가이젠하임 포도주 대학에서 양조학 수학, 프랑스 보르도 소재 CAFA 와인스쿨 정규 소믈리에 과정 수료, 국산 와인 마주앙 개발 주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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