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근대 고스란히 담은 한국인의 몸
2011년 06월 01일 17시 51분 입력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근현대사는 한국인들에게 정신적으로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고난의 시기였다.

해방 후 해외에 거주하던 한국인 가운데 230만 명이 돌아오고 50만 명 이상의 북한 주민이 정치적인 이유로 월남하는 등 대규모 인구 이동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세균과 바이러스가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곧 이어진 한국전쟁에서 네이팜탄과 로켓탄, 기관총 등 최신 살상무기가 총동원된 가운데 극심한 고통과 상처, 질병의 시기가 펼쳐졌다.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교수를 지낸 전우용 씨가 쓴 '현대인의 탄생'(이순 펴냄)은 해방 이후 한국전쟁 때까지 한국인의 질병과 위생, 의료 양상을 집중적으로 탐구한 책이다.

1945년부터 1953년까지 8년간은 말 그대로 '의료의 사각지대'였다.

해방 후 인구이동의 파도 속에서 군중들이 굶주린 채 우왕좌왕하는 사이 페스트와 콜레라, 두창, 디프테리아, 장티푸스 등 각종 전염병이 동시다발적으로 창궐했다고 한다.

1948년에 태어난 44만 명의 아기 가운데 40%에 달하는 18만 명이 채 돌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청장년층 사이에서 퍼진 결핵, 성매매 종사 여성의 증가로 확산된 성병, 그리고 해방과 함께 폭발적으로 늘어난 마약 공급으로 인한 마약 중독이 3대 '망국병'으로 꼽히기도 했다.

당시 행정기관은 질병을 범죄와 같은 방식으로 취급했다.

"사회의 안정에 위해를 끼치는 범죄자와 개인의 건강에 해악을 끼치는 세균은 모두 불순, 불량, 불온, 부정한 것으로 파악된다. 치안과 위생 행정의 근본목적은 이들 요소를 적발, 차단, 격리, 제거하는 것이다."(51쪽)
    

그런가하면 한국전쟁은 그야말로 '질병과 고통의 전시장'이었다. 폭격의 피해뿐만 아니라 동상, 영양실조, 전염병 등으로 사상자가 이어졌다. 공식통계에 의하면 한국전쟁 중 200만 명 이상이 죽거나 다쳤다고 한다.

저자는 그러나 책 속에서 전쟁이 죽음을 사람들 주변 가까운 곳에 끌어다 놓음으로써 한국인들이 청결과 위생 담론을 내면화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 서양 의학이 도입된 지 반세기가 지나도록 대다수 사람들이 질병과 병원을 바로 연결짓지 않았는데 전쟁 이후 의학이 한층 사람들에게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질병과 의학을 대하는 현대적인 관점도 이때 생겨났다.

"전쟁은 한국인 모두에게 국민이 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거에 깨우쳐주었다. (중략) 국가는 건강한 국민을 만들기 위해 의학의 시선으로 국민을 살폈고, 국가의 관점을 내면화한 국민들 역시 의학의 시선으로 자기 몸을 살피는 방법을 배웠다."(325~326쪽)
    

저자는 "현대인은 의학의 시선으로 자기 몸과 생활습관, 주변환경을 살피고 교정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라며 "그런 점에서, 해방 이후 한국전쟁기까지의 보건의료사는 현대 한국인의 탄생사라 할 만하다"고 말했다. 344쪽. 1만5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