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하나씩 갖고 계신가요?"
이어폰을 꽂고 화면에 등장한 한 여자가 카메라를 향해 아이폰을 들어올리며 "이런 물건들이 어디서 왔는지, 버려진 후에는 어디로 가는지 생각해 본 적 있느냐?"고 묻는다.
이어 간단한 애니메이션으로 물건의 일생을 보여주는 이 20분짜리 동영상은 전세계에서 1천만 명 이상이 보며 화제를 모았고 학교와 교회, 단체 등에서 교육 자료로 활용되기도 했다.
동영상의 주인공인 환경운동가 애니 레너드가 쓴 '물건 이야기'(김영사 펴냄. 원제 'The story of stuff')는 같은 제목으로 먼저 제작된 동영상 내용을 보강한 책이다.
저자는 20년간 세계 각지를 누비며 알루미늄캔부터 책, 면티셔츠, 노트북, 휴대전화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쓰고 버리는 온갖 공산품들의 탄생과 소멸 과정을 치밀하게 추적했다.
추출, 생산, 유통, 소비, 폐기의 다섯 단계로 나눈 물건의 일생에서 단계마다 얼마나 큰 환경적, 경제적 비용을 치르고 있는지를 고발한다.
가령 추출 단계를 보면, 평범한 사무용, 복사용 종이 1t을 만들기 위해 숲에서 나무 2~3t이 베어지며, 금반지 하나에 들어가는 금을 채굴하는 과정에서는 20t의 유독한 광산 폐기물이 발생한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통해 많이 알려졌듯이 다이아몬드 채굴은 분쟁의 원인이 되고, 범죄집단의 자금줄이 되기도 했다.
생산 단계에서의 비용도 만만치 않다.
값싼 면티셔츠 한 장 뒤에는 면화작물 재배에 필요한 막대한 물과 화학약품, 방직 과정에서 나오는 폐수, 구김방지 등 처리과정에 쓰이는 위험한 화학약품, 그리고 티셔츠 제조공장에서의 노동 착취까지 무시못할 비용이 숨어있는 것이다.
유통 단계의 비용을 살펴보기 위해 저자는 '언제나 낮은 가격'을 표방하는 월마트를 파헤친다.
"가격표에야 얼마라고 씌어 있든, 월마트 제품 하나하나의 진정한 비용은 그보다 훨씬, 훨씬 높다. (중략) 그다음 단계인 유통매장에서 외부화된 비용은 절정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많은 노동자가 연방정부가 정한 빈곤선에 못 미칠 정도로 적은 소득으로 살아간다."(221쪽)
소비자들이 계속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기업의 '계획적 구식화' 전략으로 소비에도 과다한 비용이 발생한다.
소비자들은 물건이 정말 낡아서가 아니라, 기업이 낡았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새것을 사들인다. 전자제품과 가정용품은 수선 비용보다 새로 구입하는 게 더 싸기 때문에 버리고 새로 사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물건의 수명이 다한 후 마지막 단계인 폐기 단계에서는 환경 비용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부유한 나라들이 독성 쓰레기를 멀고 가난한 나라로 보내는 비극적인 일도 발생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물건의 일생을 비판적으로 파헤치는 데 그치지 않고 각국의 희망적인 사례도 소개하며 숨겨진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도저히 손댈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취하고-만들고-버리는' 시스템을 보면서도 여전히 희망은 있다고 믿는다"며 "대안적인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많은 사람이 변화를 원한다면 지금과는 매우 다른 길을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승진 옮김. 500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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